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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는 12일 정상 간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를 개시하자고 합의한 이후 이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장관급 회의를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9월 27일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러 주도 종전 논의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러시아에 국토의 20%를 빼앗긴 우크라이나, 미국 아파트 복비 못지않게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막대한 비용을 소모한 유럽연합(EU)은 참여하지 못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우크라이나를 가장 든든하게 돕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기류가 급변하자 우크라이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EU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종전 논의를 끌고간다며 비판 방공제 했다. 
1938년 뮌헨 협정과 1945년 얄타 회담처럼 실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제대로 발언권을 갖지 못한 채 동유럽의 정세가 결정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유럽 안보를 온전히 책임지지 않으려는 조짐과 더불어 ‘미국 없는 안보’에 대한 우려를 인천정보산업진흥원 키우는 모양새다.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해선 전략적 억제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우크라이나 여군이 전쟁 관련 언급을 하면서 눈물을 닦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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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만에 ‘회유 정치’ 재연되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취하는 방식을 놓고 일각에선 ‘회유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려는 국가가 원하는 것을 수용해서 파국을 막는다는 의미다. 
1938년 뮌헨 가계기업대출 협정이 대표적 사례다. 나치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뮌헨 협정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 내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기는 것에 동의했다.
이 과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체임벌린은 뮌헨 협정 체결 직후 “이게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정 체결 이후 나치 독일은 호전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았고,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가 뮌헨 협정처럼 진행된다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역사적 교훈을 망각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과 진행중인 광물 협정이 유사시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경제적 이권을 주고도 안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보장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우려가 있다.





부상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서로를 부축하며 이동하고 있다. AP통신



미국의 무기 지원이 끊긴다면 우크라이나가 버틸 수 있는 기간은 불과 몇 달 정도다. 

우크라이나는 오랜 기간 미국이 같은 편이라는 점에 익숙해져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심’에 맞설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접근법과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질 의사가 없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덴마크의 영토인 그린란드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을 무시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안보의 근간이었던 나토의 결속력이 흔들리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토 회원국의 국방비 증액도 압박하고 있다. 유럽 차원의 독자적인 안보태세 구축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주요 회원국들은 일단 호응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정말로 유럽 안보 비중을 낮춘다면, 러시아의 위협을 억제할 힘이 약해질수밖에 없다. 미국의 의중을 어떤 형식으로든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국내총생산(GDP)의 2.3%인 국방비 비중을 2027년까지 2.5%로 높이고, 2029년부터는 3%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영국 국방비는 539억 파운드(97조6000억원)였다.

러시아와 인접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도 GDP의 4~5%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할 방침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노천 광산에서 크레인이 모래를 퍼올리고 있다. AP통신



덴마크도 올해와 내년 국방비를 500억 크로네(약 10조원) 추가 편성한다고 발표했고,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기독민주당(CDU)도 2000억 유로(약 301조1400억원) 규모의 긴급 방위비 편성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지휘통제·통신·병참 등의 핵심 분야에서 오랜 기간 미국에 의존해온 유럽이 단기간 내 안보 분야에서 ‘홀로서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 무기를 생산해서 전력화하려면 최소 수 년은 걸린다. 기술적 오류나 원자재 조달 등의 문제로 납기가 지연된다면 전력화 시기는 더욱 늦어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때까지 기다릴 지는 확실치 않다.
군사작전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지금은 미군 대장이 이끄는 나토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SACRE)가 유럽 차원의 군사작전을 주도한다.
이는 미군이 나토군 지휘를 지속하면서 전략 자산을 제공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미국의 역할이 축소된다면, 유럽이 떠맡아야 하는 임무는 더욱 늘어난다. 
핵우산도 변수다. 독일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총선 이틀 전인 지난 21일 인터뷰에서 “영국과 프랑스와 함께 핵 공유 또는 최소한 두 나라의 핵 방위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나토 회원국으로서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았다. 미국은 1966년 체결된 핵 공유 협정에 따라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튀르키예에 전술핵 150여개를 배치했다. 
핵무기 사용과 통제, 보관은 미군이 담당하지만, 적국에 핵탄두를 투하하는 임무는 주둔국 군용기가 맡도록 분담한다. 이를 위해 독일은 F-35A 구매를 결정하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핵 전력을 갖추고 있지만, 미군 전술핵 만큼의 효과가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비례성의 원칙’에 따라 전략핵에는 전략핵으로, 전술핵에는 전술핵으로 맞서야 한다. 영국·프랑스가 제공할 핵우산이 미군 전술핵을 대신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우크라이나 대공포가 러시아 무인기를 향해 포탄을 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략적 억제력 갖춰야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필요에 따라선 동맹국과 적성국을 구분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행보는 미국의 ‘안보 우산’을 믿던 국가들에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의 현 대외정책이 지속되면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추가 점령 등에 대해 미국이 반대할 도덕적 명분도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있다. 그린란드를 탐내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만 공격을 비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고도 아무 처벌없이 전쟁의 목적을 거의 이룰 수 있게 됐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낀 우크라이나는 영토와 자원을 내어준 채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채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냉전 시절부터 유지됐던 국제적 규범와 안보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 남은 방법은 독자적인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없다. 
특히 유사시 적국의 수도 등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탄도·순항미사일을 비롯한 전략적 억제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도나 산업단지 또는 전쟁지도부가 잠재적 적대국 전략무기에 의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해당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략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감시정찰 능력을 갖추는 것도 필수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전부터 러시아 내륙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 등의 전략무기를 확보하고 있었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관련 의사결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가 탄도미사일 개발을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가 두 개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러시아군을 향해 자주포를 쏘고 있다. AFP연합뉴스



탄도미사일은 발사되면 대기권 밖으로 벗어났다가 재진입해 목표물을 타격한다. 속도가 빨라서 방공망으로 요격하기 어렵고 드론보다 폭발력이 훨씬 강하다.

유사시 탄도·순항미사일을 요격할 미사일방어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미사일방어체계는 공격적인 성격이 없는 전략무기라는 점에서 주변국의 반발도 적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저지할 수단을 갖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등에서 패트리엇(PAC-3) 등을 지원하면서 러시아 미사일 위협이 다소나마 감소했지만, 전쟁 전에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면 전쟁의 판도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 몰아치는 국제안보 질서 변화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선 아직까진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없지만,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밀어닥칠 일이다.
뮌헨 협정 당시의 체코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우크라이나가 겪은 일이 한반도에서 재연되려면, 강대국에게 자국의 운명을 고스란히 맡겨서는 안된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와 그에 맞는 전략 및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